채권자취소권 성립 요건, 언제 행사할까?

채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나 ‘채무자가 가진 재산으로부터 변제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채무자가 일부러 재산을 은닉하거나 제3자에게 넘겨버린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이처럼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치기 위해 고의로 한 재산 처분을 되돌릴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채권자취소권’이다.

민법 제40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권리는 매우 중요한 채권 보호 장치이며 요건이 충족되면 채권자는 법원을 통해 취소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요건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채권자취소권 개념 정리

채권자취소권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칠 의도로 자기 재산을 제3자에게 이전하거나 포기했을 때 채권자가 그 행위를 취소해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권리다.

이는 채무자의 재산은 곧 채권자에게 담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채무자가 가진 재산은 변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임의로 줄이거나 없애버리는 것은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간주된다.

가령 채무자가 부동산을 가족에게 헐값에 넘긴 경우 그 행위는 사해행위로 간주될 수 있고 채권자는 이 행위를 취소해 무효로 돌려놓고 해당 재산에서 직접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단, 이는 사법적인 취소권으로서 반드시 법원의 판결을 통해 행사해야 하며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채권자취소권 성립 요건

우리나라 민법 제406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한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는 채권자가 이를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조문에서 알 수 있듯이 채권자취소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법률행위의 성격상 대상은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이며 이 행위가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여야 하며 채무자와 수익자 모두에게 일정한 주관적 요건이 있어야 한다.

① 채권의 존재

채권자취소권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우선 취소를 청구하려는 채권자가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채권은 반드시 확정된 채권일 필요는 없으며 장래에 확정될 수 있는 조건부 채권이나 기한부 채권도 포함된다.

다만 사해행위 시점 이전에 존재하거나 성립 원인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며 사해행위 이후에 성립된 채권은 원칙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따라서 채권이 언제 성립되었는지의 시점 판단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소송에서도 자주 다투는 쟁점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2023년 6월에 친구에게 부동산을 헐값에 넘겼다면 그보다 먼저 발생한 채권을 가진 채권자만이 이 행위에 대해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채권이 그 이후에 생겼다면 원칙적으로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

② 사해행위의 존재

사해행위란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감소시키거나 재산 상태를 악화시키는 법률행위로서 결과적으로 채권자의 만족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는 증여 부당한 헐값 매매 채권 포기 상속 포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사해행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 행위 당시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였거나
  • 그 행위로 인해 채무초과 상태가 발생했으며
  • 재산 감소가 실제로 발생해 채권자의 집행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 경우

예컨대 채무자가 5억 원의 부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일한 부동산을 1억 원에 가족에게 매도했다면 이는 명백한 사해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③ 채무자의 악의

민법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행위를 했을 것을 요구한다. 이를 ‘채무자의 악의’라 부르며, 다시 말해 채무자는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채권자가 손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어야 한다.

이 요건은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인식과 의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해행위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의’는 비교적 쉽게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고 제3자에게 재산을 이전했다면 그 자체로도 악의의 추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판례도 있다.

④ 수익자 또는 전득자의 악의

채무자에게만 악의가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익자 즉 해당 재산을 넘겨받은 사람 역시 채권자를 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수익자가 선의라면 법률행위 자체는 취소되지 않는다.

문제는 제3자에게 재산이 다시 넘어간 경우다. 이를 ‘전득자’라고 부르는데 전득자 역시 악의일 경우에만 취소가 가능하다. 따라서 채권자는 수익자와 전득자 모두에게 악의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취소 청구가 가능하며 이 부분이 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요건 중 하나다.

만약 수익자가 채무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라면 이들이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악의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

채권자취소권은 언제까지 행사할 수 있나?

채권자취소권은 영원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민법 제406조 제2항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이 기간을 넘기면 아무리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채권자취소권 소멸 시효는 아래 2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주관적 소멸시효로 사해행위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상대방 즉 수익자 또는 전득자를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취소권을 행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채권자가 채무자가 재산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넘겼는지를 정확히 인지한 시점부터 1년 안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둘째는 객관적 소멸시효로 사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이내에는 무조건 행사해야 한다. 채권자가 사해행위를 몰랐더라도 행위 자체가 이루어진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취소권은 자동으로 소멸된다.

예를 들자면 채무자가 2019년 1월 1일에 부동산을 친인척에게 헐값으로 매각했고 채권자가 그 사실을 2023년 5월에 알았다고 하더라도 2024년 5월 이전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2024년이 넘어가면 더 이상 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반면 2025년이 되어버리면 설령 최근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사해행위일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권리는 소멸된다.